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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이슈

907일간의 탈주 끝에 붙잡힌 신창원은 왜 탈옥을 결심했나

by 펭귄 류 2020.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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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TV에서 신창원에 대한 뉴스를 보았던 기억이 난다. 태권도장에서 쉬는 시간에 도장 친구들과 같이 놀고 있는데 갑자기 사범님이 "신창원이 드디어 잡혔다!"라고 소리쳐 놀랐었다. 그 당시에는 너무 어려서 신창원이 누구인지도, 어떠한 범죄를 저지른 지도 관심이 없었다. 머리가 좀 커서 생각해보니 탈옥을 해서 907일 동안이나 도망을 쳤다니 참 영화에서만 나올듯한 사건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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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신문사의 메인을 장식한 신창원 검거 소식

궁금한 점이 생겼다. 

 

"어떠한 삶을 살아왔길래 그러한 선택을 했을까?" 

 

그는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은 매우 불행했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 어머니는 간암으로 일찍 돌아가셨으며, 아버지에게 학대도 받았다. 거기다가 계모까지 생기며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당연히 학교 생활에도 재미를 붙이지 못했고, 결국 중학교 1학년에 퇴학을 당했다.

그때부터 그는 범죄의 유혹에 빠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동네에서 수박과 닭 같은 작은 것으로 시작하여 점점 더 규모가 커져갔다. 달리기도 매우 빨라서 잡기가 힘들었으며, 싸움까지 잘해 쉽게 싸움에 휘말리곤 했다. 1989년 서울에서 고향의 선후배 4명과 금은방과 슈퍼마켓 등을 털다가 무리 중에 한 명이 문구점 주인을 살해하는 바람에 체포되게 된다. 해당 일당은 범죄 발생 며칠 만에 다 붙잡혔지만, 신창원은 총상을 입고도 도주하여 반년 뒤에나 잡혔다.

 

신창원_2
신창원 탈옥의 과정

이 범죄로 인해 강도살인치사죄가 인정되어 무기징역을 받았다. 그러다가 1994년에 부산교도소로 이감되게 되는데 1997년 1월에 탈옥을 저지르고 말았다. 노역 작업 중에 얻은 실톱 날을 이용하여 하루에 20분씩 4개월간 조금씩 쇠창살을 갉아냈다. 그렇게 감방을 빠져나와서 외벽 환기통을 타고 1층으로 내려온 후 교도소의 교회 신축공사장에 땅을 파고 들어갔다. 그리고는 그 공사장에서 획득한 밧줄을 이용해서 외부로 통하는 펜스를 넘어 교도소를 탈출했다.


이 모든 작업이 1시간 3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2년 6개월간 거의 40,000km 거리의 도주를 이어갔다. 도주 생활을 이어가는 동안은 현금이나 차량을 훔치며 살았다. 그동안 경찰에 의한 체포 직전에 따돌리고 도망간 것만 6번이나 된다. 또한 수십만 명의 경찰 인력도 동원되고 매스컴에 오르며, 현상금까지 붙게 된다. 

 

 

 

1999년에 현상금이 5,000만 원에 이르렀는데, 당시 대치동 은마아파트 35평의 가격이 1억 5천만 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금액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창원 곁에는 늘 여자가 있었는데, 이 이유는 자신을 안전하게 숨겨줄 사람이 항상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1999년 7월 16일에 드디어 검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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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원 티셔츠, 눈 아프다

가스레인지 수리공이 의뢰받은 집을 수리하다가 그 집에서 신창원을 보았고, 재차 확인 후 경찰에 신고하여 결국 잡히게 된다. 검거 당시에 몸에 딱 달라붙는 화려한 색의 니트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이게 신창원 티셔츠로 불리며 유행도 탔다. 결국 그는 형량이 추가되었고 흉악범들만 모아두는 청송교도소의 독방에 수감되었다. 

총에 맞고도 도망을 가고, 격투 중에 부러진 뼈를 스스로 맞추고, 추격이 심해질 때는 창고 같은 곳에 숨어서 쥐까지 잡아먹으며 일주일 넘게 은신한 적도 있었다. 확실히 보통 사람은 아닌가 보다. 탈옥의 이유도 교도관들의 인권유린이라고 꾸준히 밝혀왔다.

신창원 출소일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무기징역에 추가로 22년을 더 받았으니 평생을 감옥에서 살다가 삶을 마무리 지을 것이라 봐도 된다. 그렇게 수감 생활을 이어가며 공부도 하고, 자살 시도도 하고, 소송도 진행했었다. 법도 공부를 했었는데 국가와 교도소장을 상대로 진행한 4건의 소송을 승소한 점도 재밌는 사실이다.

신창원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었다:

"저 같은 범죄자가 다시는 없게, 사회와 가정에서 문제아들에게 사랑을 주십시오"

물론 어린 시절의 기억과 경험이 향후 삶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이 이유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핑계일 뿐이다. 그렇게 따지면 가난한 이들은 모두 나쁜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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